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Author
    채사장
  • Published year
    2014
  • Category
    Nonfiction
  • 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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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Highlights

인류의 역사는 생각보다 불평등했다. 근대와 현대는 백번 양보하더라도 서구 중심의 역사이며, 근현대 시기의 동양은 항상 지배받고 교화되어야 하는 식민지의 입장에 놓여 있었다. 세계의 주인공은 안타깝게도 서양인임이 분명한 것 같다.
독일의 동맹국인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러시아 지역에서 민족 문제로 암살당한 것이다. 독일한테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사건을 빌미로 오르트리아는 세르비아에,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궁극적인 원인은 자본주의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공급과잉이라는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산업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독일이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은 전쟁 이외에는 없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유지해주는 핵심요소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유행이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서비스업 중심이다. 한국 청년들은 더 이상 육체노동을 원하지 않는다. 이미 육체노동을 요구하는 중소기업의 공장들은 일손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정부가 개입한 대규모의 공공사업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개별 노동자의 이익으로 돌아가기보다는 기계화된 특정 기업들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될 것이다.
유대인은 예수 살해라는 전 우주적 범죄를 저지른 민족으로 취급받았다. 자신의 국가를 갖지도 못했으며, 여러 국가에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다른 민족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나라가 없으니 농사를 지을 땅도 없었다. 그래서 유대인은 어쩔 수 없이 중세 기간 동안 가장 천시되던 상업과 대부업에 종사했다. 그런데 근대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상업과 대부업은 무역과 금융업이 되었고, 유대인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다. 지금까지도 세계적 금융 산업은 유대자본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는 보통 역사를 영웅사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영웅사관이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재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특정 인물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와 반대되는 역사관이 민중사관이다. 민중사관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를 민중으로 본다. 우리가 세계대전을 영웅사관의 시각으로 본다면,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람은 히틀러가 된다. 반면 세계대전을 민중사관의 시각으로 본다면,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인은 경기침체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했던 독일 민족의 의지가 된다. 영웅사관과 민중사관은 어느 것은 옳고 다른 것은 그르다기 보다는, 역사 해석을 다채롭게 해주는 역사 사유의 두 시각이라고 하겠다.
시장 확보가 필수적인 자본주의의 입장에서는, 자본주의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가 늘어나는 것은 시장의 축소를 의미한다. 시장의 축소는 수요량의 감소를 의미하고, 수요량의 감소는 자본주의의 생산 중단, 즉 공황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 국가의 존재 자체가 자본주의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는 ‘생산수단의 개인적 소유를 인정하는지 여부’가 된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 잉여생산물 모두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체제다.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지만, 잉여생산물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체제다.
초기 자본주의는 시장의 자유만이 존재하는 경제체제다.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며 등장하는데,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고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제체제다. 다음으로 신자유주의는 후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등장하는데, 정부의 개입을 축소하고 시장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경제체제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는 시장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고, 정부의 강력한 개입과 통제만이 존재하는 경제체제다.
일부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갈등을 선과 악의 문제로 받아들이도록 분위기를 형성해갔다. 자본주의가 자유를 수호하는 선이고, 반대로 공산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는 악이라고 국민들을 교육하고 설득했다. 이것은 지배자가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을 요청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를 거쳐 경쟁 상대였던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인간적인 얼굴을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정부의 개입으로 시장이 왜곡되고 효율성이 낮아지는 문제가 만연해 있었다. 이러한 후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초기 자본주의로의 회기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민주주의 초기에 자유와 평등을 강조했던 자유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은 보통선거권을 두려워해서 자본가는 4표, 노동자는 1표의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에 의해 사회가 필연적으로 공산화되리라 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1인 1투표제가 시행되는 한국은 공산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오랜 시간을 보수 정당이 집권해오고 있다. 이런 한국의 상황을 본다면 밀은 당홍스러워할 것이다. 그는 미디어의 영향력을 상상하지 못했다. 대중은 생각보다 나약하고 무관심에서 자신의 이익과 권리가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기 귀찮아한다. 미디어는 그 틈으로 파고들어 대중이 봐야 할 곳을 친절하고 세련되게 가르쳐준다.
20세기에 호르크하이머를 주축으로 결성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은 대중매체의 오락적 기능이 갖는 무정적인 측면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비판 이론에 따르면 미디어의 오락적 기능은 대중들에게 사회 체제의 압박을 숨기고 도피하게 기능한다. 미디어의 말초적인 가십거리들이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사회가 아닌 개인에게 돌리는 사고방식은 그 사회의 문제를 은폐함으로써 대중의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고 말한 의미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아편이 개인이 처한 삶의 고통을 허구적 환상으로 회피하게 하듯이, 종교 역시 심리적 안정을 통해 민중이 느끼는 사회적 불만을 해소함으로써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불만을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종교는 치열한 실천적 저항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행위의 가치를 폄하하고, 사후 세계나 내면 세계라는 개인적인 관심사를 부각함으로써, 사회로 향해야 마땅한 정당한 분노를 안으로 삭히도록 한다.
소수의 달변가는 자신의 지지 기반을 토대로 권력을 남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차피 명분이 있고, 설명만 잘하면 판단 능력이 결여된 대중은 자신을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첫 번째 문제점이 발생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독재자’가 그것이다.
경제 성장과 부를 추종하는 다수에 의해서 소수의 반대 견해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민주주의의 두 번째 문제점이 발생한다. ‘다수의 독재’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독재를 만들어낸다는 문제점을 갖는다. 다만 그 독재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A사회의 독재는 어리석은 다수가 ‘독재자를 선출’하는 경우다. 대표적인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다. 그는 쿠데타를 통해 독재자가 된 것이 아니다. 대중들의 열렬할 지지를 통해 선출 되었고, 이후에 독재자가 되었다. 물론 독일인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경제적 위기 상황 아래서 독일인들은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이나 윤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집단의 이기성으로부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했다. 대중의 분위기에 휩쓸려 암묵적으로 독재자의 탄생에 동조한 것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와 차이가 있다. 그것은 정치적 권력의 정당성을 누구로부터 얻는지에 대한 차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에 엘리트가 있거나 없거나, 어쨌든 정치인의 권력의 정당성이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시민에게 그를 대리자로 뽑거나 뽑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반면 엘리트주의는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통치자의 정당성이 시민으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엘리터의 정치적 정당성은 엘리트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정치는 한마디로 어떤 경제체제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같은 의미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서 결정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자본주의, 후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혹은 사민주의, 공산주의 중 우리는 선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선택에 따라 사회의 부와 재화가 분배된다.
실제 국제기구의 구조상 소수 선진국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문제가 있다. 유엔은 190여 개 국가의 민주적인 의사 결정 방식에 의해 행동하는 기구가 아니라, 핵무기를 대량 소유한 상임이사국 5개의 만장일치체제로 행동 방향이 결정되는 기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러시아, 영구, 프랑스, 중국의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라도 반대 의사를 개진하면 국제적 행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엔은 이념적 문제를 다루는 데는 극도로 무능력하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언어 철학자인 동시에 사회정치적 실천가인 노암 촘스키는 “신문과 방송이 광고주인 사기업의 이익을 대벼해주고, 사기업들은 광고로 언론의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잘못된 이익의 먹이사슬이 형성됐다”라고 말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미디어의 한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사실명제를 탐구하는 학문은 과학이고, 당위명제를 탐구하는 학문은 윤리다. 사실명제는 항상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반면, 당위명제는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다.